블라인드가 올라가고 딜러가 테이블을 한 번 두드린다. “25 칩 걷겠습니다.” 앞사람 스택에서 초록색 칩이 쓸려 나가고, 내 앞에는 25짜리 세 개가 남아 있다. 100짜리 하나를 받기엔 부족한 양이다. 그러면 이 세 개는 어디로 가는 걸까.
딜러는 카드를 세 장 뒤집어 놓는다. 나는 7이 나왔고, 옆자리는 Q가 나왔다. 칩은 옆자리로 간다. 내 앞은 비었다.
이 순간 거의 모든 사람이 똑같이 생각한다. 나 지금 탈락인가?
답부터: 세 문장이면 끝납니다
- 컬러업은 더 이상 쓰지 않는 작은 단위의 칩을 테이블에서 걷어내는 작업입니다.
- 큰 칩으로 바꾸기에 모자란 잔칩은 칩 레이스로 처리합니다. 칩 한 개당 카드 한 장을 받고, 높은 카드가 칩을 가져갑니다.
- 칩 레이스로는 탈락하지 않습니다. 레이스에서 전부 잃어도 현재 쓰이는 가장 작은 단위의 칩 1개를 받고 게임에 남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이 글의 전부라고 해도 된다. 국내에 번역돼 배포되는 TDA 토너먼트 디렉터 협회 룰 24조에 명문으로 적혀 있다. “플레이어는 칩 레이스로 인해서 탈락할 수 없으며, 칩 레이스로 인해 남은 칩 또는 칩들을 모두 잃는 플레이어는 플레이 중인 칩 중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칩을 1개 받게 됩니다.”
컬러업과 칩 레이스는 같은 말이 아니다
한국어 포커 용어 설명에서 이 두 단어가 뒤섞여 쓰이는 경우가 많다. 구분해 두면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일이 훨씬 또렷해진다.
- 컬러업(color up) — 단위를 없애는 행위 자체. 25짜리를 거두고 100 이상으로만 게임을 돌리겠다는 선언이다. 25짜리 네 개는 100짜리 한 개로 그냥 교환된다. 여기엔 운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 칩 레이스(chip race) — 교환이 깔끔하게 끝나지 않은 나머지를 처리하는 절차. 25짜리 세 개처럼 새 단위 하나를 못 채우는 잔칩만 대상이다.
즉 레이스는 컬러업의 꼬리다. 컬러업이 있어도 모두가 딱 맞게 나뉘면 레이스는 아예 열리지 않는다.
진행 순서 — 1번 자리부터, 칩 한 개에 카드 한 장
절차는 생각보다 기계적이다.
- 딜러가 각자 앞의 잔칩 개수를 확인한다.
- 1번 자리부터 시계 방향으로, 잔칩 한 개당 카드 한 장을 앞면으로 깐다. 한 사람의 카드를 다 주고 다음 사람으로 넘어간다.
- 가장 높은 카드가 나온 사람이 새 칩 한 개를 받는다.
- 걷어낸 단위만큼 새 칩이 나갈 때까지 반복한다.
카드가 앞면으로 깔린다는 점이 중요하다. 레이스는 테이블 전체가 지켜보는 공개 절차다. 딜러가 뒤에서 처리하고 결과만 알려주는 방식이 아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면 그 자리에서 물어야 한다. 레이스가 끝나고 칩이 섞인 뒤에는 되돌리기 어렵다는 조항이 뒤따라 붙는다.
같은 숫자가 나오면 스페이드가 이깁니다
잔칩이 많은 테이블에서는 동점이 자주 나온다. 이때는 무늬로 가른다. 브리지 순서라고 부르는 서열이다.
- 스페이드 ♠ (가장 높음)
- 하트 ♥
- 다이아몬드 ♦
- 클럽 ♣ (가장 낮음)
핸드 랭킹에서는 무늬에 서열이 없다고 배운다. 플러시끼리 붙어도 스페이드가 유리할 일은 없다. 그래서 레이스에서 갑자기 무늬가 등장하면 낯설게 느껴지는데, 이건 핸드를 비교하는 게 아니라 순위를 정해야 하는 절차이기 때문에 쓰는 별도의 기준이다. 관련해서 짚어두자면, 사이드팟에서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 홀수 칩을 배분할 때도 비슷하게 포지션이나 무늬 같은 외부 기준이 동원된다.
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칩은 최대 한 개
잔칩을 여덟 개 들고 있으면 카드를 여덟 장 받는다. 그중 에이스가 두 장 나왔다. 칩 두 개를 받을까?
아니다. 한 플레이어가 레이스로 받을 수 있는 칩은 최대 1개다. 카드를 많이 받으면 이길 확률이 올라가는 것은 맞지만, 상한은 하나로 잠겨 있다.
이 조항이 왜 있는지 생각해 보면 레이스의 성격이 드러난다. 레이스는 회계 처리이지 게임이 아니다. 잔칩을 들고 있던 사람이 운 좋게 칩 세 개를 쓸어가서 스택 순위가 뒤집히면, 아무도 베팅하지 않은 판에서 칩 리더가 바뀌는 셈이 된다. 상한 1개는 그걸 막는 장치다.
반대로 말하면, 레이스로 얻거나 잃는 양은 구조적으로 작다. 잔칩 때문에 토너먼트가 뒤집히는 일은 거의 없다. 결과에 신경이 쓰이는 건 사람 마음이지만, 실제 EV 손익은 블라인드 한 바퀴보다 작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탈락 불가 조항이 실제로 작동하는 순간
여기가 이 글에서 가장 자주 검색되는 지점이다. 상황을 구체적으로 놓고 보자.
블라인드 400/800 레벨로 올라가면서 100짜리를 걷는다. 내 스택은 100짜리 두 개, 그게 전부다. 카드 두 장을 받았는데 둘 다 낮았다. 칩은 다른 사람에게 갔다.
이때 내가 받는 것은 현재 플레이 중인 가장 작은 단위의 칩 1개다. 100을 걷어낸 뒤 가장 작은 단위가 500이라면, 나는 200을 가지고 들어가서 500을 받고 나온다. 레이스에서 져서 칩이 늘어난 것이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의도된 결과다. 토너먼트에서 플레이어를 탈락시킬 수 있는 것은 플레이뿐이라는 원칙이 깔려 있다. 카드 한 장 뒤집어서 사람을 집에 보내지는 않는다. 그래서 숏스택일수록 레이스는 손해가 아니다. 단위가 바뀌는 레벨에 잔칩만 남아 있다면, 확률적으로는 오히려 조금 이득이다.
실전에서 이게 의미를 갖는 건 생존 그 자체가 돈이 되는 구간이다. 버블 근처에서 칩 1개로 살아남아 한 자리를 올라가는 가치는 토너먼트 상금 구조를 보면 바로 계산이 된다. 새틀라이트라면 더 극단적이다. 좌석 커트라인을 넘기만 하면 되는 게임에서 칩 1개는 좌석 하나와 사실상 같은 값이다.
라운드업을 하는 하우스도 있습니다
여기서 솔직하게 범위를 좁혀야 한다. 위에 적은 절차는 TDA 룰 기준이고, 국내 라이브 토너먼트 다수가 이를 따른다. 다만 모든 하우스가 같지는 않다.
일부 하우스는 레이스를 열지 않고 라운드업으로 처리한다. 잔칩이 새 단위의 절반 이상이면 올려주고 아니면 걷어가는 방식, 또는 잔칩 전부를 한 단위씩 올려주는 방식이다. 카드를 뒤집지 않으니 빠르고, 분쟁도 없다.
어느 쪽인지는 그날 그 토너먼트의 구조표(structure sheet)와 하우스 룰에 적혀 있다. 레벨이 올라가면서 단위가 바뀔 예정이라면 미리 확인해 두는 게 낫다. 참가 시점에 구조를 읽어두면 레이트 레지 마감과 스택 단가까지 같이 정리되니 어차피 한 번은 봐야 할 종이다.
애드온이 있는 토너먼트는 순서가 한 겹 더 꼬인다. 애드온으로 들어온 칩이 걷어내려던 단위와 겹치면 컬러업 시점이 밀리기도 한다. 리엔트리·리바이·애드온이 서로 다른 버튼인 이유를 알고 있으면 그 타이밍이 왜 어긋나는지 짐작이 된다.
온라인에는 칩 레이스가 없습니다
온라인 MTT를 수백 판 돌린 사람이 라이브 토너먼트에서 처음 이 절차를 만나고 당황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온라인에는 이게 없다.
온라인 스택은 숫자다. 1,325는 1,325로 표시되면 그만이고, 25라는 단위를 물리적으로 없앨 이유가 없다. 테이블 위에 쌓을 플라스틱이 없으니 단위를 줄여 자리를 만들 필요도 없다. 컬러업이라는 작업 자체가 라이브 포커의 물리적 제약에서 나온 절차다.
그래서 칩 레이스는 온라인에서 라이브로 넘어갈 때 새로 배워야 하는 항목 목록에 들어간다. 쇼다운 순서, 레이즈 성립 조건, 스트링 베팅처럼 소프트웨어가 대신 처리해 주던 것들과 같은 부류다. 누가 먼저 카드를 까는지와 리레이즈가 얼마부터 성립하는지를 함께 읽어두면 라이브 첫 테이블에서 멈칫할 일이 꽤 줄어든다.
원문 규정을 직접 확인하고 싶다면 TDA 공식 룰 페이지에 영문 전문이 공개돼 있다.
자주 묻는 질문
칩 레이스에서 져서 칩이 0개가 되면 탈락인가요?
아닙니다. 플레이 중인 가장 작은 단위의 칩 1개를 받고 계속 플레이합니다. TDA 룰 24조에 명시된 조항이고, 토너먼트에서 플레이어를 탈락시킬 수 있는 것은 플레이뿐이라는 원칙에서 나옵니다.
잔칩이 많으면 레이스에서 유리한가요?
칩 한 개당 카드 한 장을 받으니 이길 확률 자체는 올라갑니다. 다만 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칩은 최대 1개로 제한되므로, 여덟 개를 들고 있어도 두 개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카드가 같은 숫자로 나오면 어떻게 가르나요?
무늬로 가릅니다. 스페이드가 가장 높고 하트, 다이아몬드, 클럽 순입니다. 핸드 랭킹에서는 무늬에 서열이 없지만, 레이스는 순위를 정해야 하는 절차라서 별도 기준을 씁니다.
컬러업과 칩 레이스는 다른 건가요?
다릅니다. 컬러업은 작은 단위의 칩을 테이블에서 걷어내는 작업이고, 칩 레이스는 큰 칩으로 깔끔하게 바꿀 수 없는 잔칩을 처리하는 절차입니다. 모두가 딱 맞게 교환되면 레이스는 열리지 않습니다.
온라인 토너먼트에서도 칩 레이스를 하나요?
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스택은 숫자로 관리되므로 작은 단위를 없앨 이유가 없습니다. 컬러업은 테이블에 칩을 쌓아야 하는 라이브 포커의 물리적 제약에서 나온 절차입니다.
레이스 결과가 잘못된 것 같으면 어떻게 하나요?
그 자리에서 바로 딜러와 플로어에게 알려야 합니다. 카드가 앞면으로 공개되는 절차이므로 진행 중에는 확인이 가능하지만, 레이스가 끝나고 칩이 스택에 섞인 뒤에는 정정이 어렵습니다.
정리하면 기억할 건 두 가지다. 잔칩은 카드 한 장에 걸리고, 그 카드가 아무리 낮게 나와도 자리를 잃지는 않는다. 25짜리 세 개가 쓸려 나가는 걸 보면서 조용히 스택을 세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