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러가 손짓을 한다. “9번 테이블 7번 자리로 가세요.” 칩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일어나 새 테이블을 찾아 앉는다. 스택을 다시 쌓기도 전에 딜러가 내 앞을 가리킨다. 빅블라인드를 내라는 뜻이다.
방금 전 테이블에서도 빅블라인드를 냈다. 한 바퀴도 안 돌았는데 두 번째다. 손을 멈추고 묻게 된다. 이게 맞나?
답부터: 맞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 테이블 밸런싱으로 옮겼다면 빅블라인드를 연달아 두 번 내는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규정이 허용하는 결과입니다.
- 대신 스몰 블라인드 자리로는 보내지 않습니다. 이건 예외 없는 조항입니다.
- 테이블이 통째로 깨져서(브레이킹) 옮긴 경우는 규칙 자체가 다릅니다. 버튼이든 스몰이든 아무 자리나 앉고, 운이 좋으면 블라인드를 한 번도 안 내고 한 바퀴를 돕니다.
한국어로 검색하면 이 두 가지가 거의 항상 뒤섞여 나온다. 그런데 블라인드를 또 내는지 아닌지를 가르는 건 정확히 이 구분이다. 국내에 번역돼 배포되는 TDA 토너먼트 디렉터 협회 룰은 둘을 아예 다른 조항에 적어 두고 있다.
밸런싱과 브레이킹은 같은 일이 아니다
둘 다 “자리를 옮기세요”로 들리지만, 벌어지고 있는 일이 다르다.
- 밸런싱(balancing) — 테이블은 그대로 두고 사람 수만 맞춘다. 어느 테이블에서 탈락자가 나와 인원이 비면, 사람이 많은 테이블에서 한 명을 떼어 보낸다. 옮기는 사람은 한 명이다.
- 브레이킹(breaking) — 테이블 하나를 없앤다. 참가자가 줄어 테이블 수를 줄여야 할 때, 한 테이블 전원이 흩어져 남은 테이블들로 들어간다.
딜러가 한 명만 부르면 밸런싱, 테이블 전체에 “이 테이블 정리합니다”라고 하면 브레이킹이다. 들고 일어나기 전에 어느 쪽인지 알아두면 새 자리에서 당황할 일이 없다.
밸런싱 — 빅블라인드가 될 사람을 ‘최악의 자리’로 보낸다
누구를 옮길지는 무작위가 아니다. TDA 룰 11-A는 다음 핸드에 빅블라인드가 될 플레이어를 지목한다. 그리고 그 사람을 받는 테이블의 “최악의 자리”에 앉힌다.
여기서 최악의 자리란 블라인드를 가장 빨리 내게 되는 자리를 말한다. 조항은 그 자리가 빅블라인드 한 번일 수도, 빅블라인드를 두 번 내는 자리일 수도 있다고 못 박는다. 다만 스몰 블라인드 자리는 절대 최악의 자리가 될 수 없다.
논리는 단순하다. 옮기는 사람은 원래 테이블에서 어차피 다음 핸드에 빅블라인드를 낼 차례였다. 자리를 옮겼다고 그 의무가 사라지면, 옮겨지는 사람만 블라인드 한 번을 공짜로 건너뛴다. 그래서 새 테이블에서도 곧바로 내게 한다. 블라인드를 두 번 내는 자리에 앉았다면 억울한 게 아니라, 이동이 없었어도 한 번은 냈을 돈에 한 번이 더 붙은 것이다.
이게 작은 금액이 아니라는 점은 짚어둘 만하다. 레벨이 올라간 뒤 빅블라인드 두 번은 스택의 상당 부분이고, 빅블라인드 앤티를 쓰는 구조라면 앤티까지 함께 따라붙는다. 이동 직후의 스택은 생각보다 가볍다.
브레이킹 — 어느 자리든 앉고, 한 핸드를 쉴 수도 있다
테이블이 깨질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TDA 룰 10-A는 깨진 테이블에서 온 플레이어가 스몰 블라인드, 빅블라인드, 버튼을 포함한 모든 자리에 앉을 수 있다고 적는다.
그리고 조건이 하나 붙는다. 앉자마자 카드를 받되, 스몰 블라인드 자리와 버튼 자리 사이에 앉게 되면 그 핸드는 받지 못한다. 그 구간은 이미 이번 바퀴의 블라인드를 다 지나간 자리라서, 끼워 넣으면 블라인드를 한 번도 안 내고 버튼까지 가져가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이다.
자리 배정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룰 10-B는 깨진 테이블의 인원을 2단계 무작위 절차로 새 테이블과 좌석에 배정한다고 규정한다. “저 자리 말고 이 자리로 가면 안 되나요”가 통하지 않는 이유다.
빈 자리에 버튼이 놓여 있는 건 고장이 아니다
새 테이블에 앉았는데 아무도 없는 자리 앞에 딜러 버튼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데드 버튼이다.
TDA 룰 32조는 토너먼트가 데드 버튼을 쓴다고 선언하고, 세부를 이렇게 정리한다.
- 다음 핸드에 버튼이 될 사람이 탈락하면, 버튼은 그 빈 자리에 놓이고 그 핸드에는 버튼 포지션이 비어 있는 채로 진행된다.
- 스몰 블라인드가 될 사람이 탈락하면, 그 왼쪽 플레이어가 빅블라인드만 내고 스몰 블라인드 없이 돈다.
- 스몰과 빅 둘 다 탈락했으면, 역시 그 왼쪽 플레이어가 빅블라인드만 낸다.
즉 버튼은 사람을 따라가지 않고 자리를 따라간다. 누가 탈락했다고 해서 블라인드 순서를 앞당기지 않겠다는 원칙이다. 덕분에 아무도 블라인드를 두 번 내거나 건너뛰지 않는다 — 밸런싱으로 옮겨온 사람만 빼고. 그 예외를 룰이 따로 적어둔 이유이기도 하다.
온라인은 오히려 반대로 움직인다
여기서부터는 라이브 경험이 그대로 통하지 않는다. 온라인 MTT의 밸런싱은 소프트웨어가 처리하고, 설계 철학이 다르다.
일반적인 온라인 클라이언트는 탈락이 발생할 때마다 인원이 가장 많은 테이블에서 무작위로 한 명을 골라 인원이 가장 적은 테이블로 보낸다. 빅블라인드가 될 사람을 지목하는 라이브 방식과 다르다. 대신 도착한 자리는 빅블라인드에서 가능한 한 먼 쪽인 경우가 많다. 무작위로 뽑힌 사람에게 블라인드 부담까지 떠넘기지 않으려는 보정이다.
결과적으로 라이브에서는 “옮기면 바로 낸다”가, 온라인에서는 “옮기면 한참 안 낸다”가 기본값이 된다. 다만 세부 처리는 사이트마다 제각각이라, 플레이하는 토너먼트의 규정 탭을 한 번은 열어보는 편이 낫다. 레이트 레지 마감 시각이나 구조표를 확인할 때 같이 보면 된다.
그래서 온라인만 돌던 사람이 라이브 토너먼트에서 처음 이동을 당하면 거의 예외 없이 멈칫한다. 칩 레이스나 쇼다운 순서처럼, 소프트웨어가 조용히 대신 해주던 절차가 갑자기 눈앞에서 사람 손으로 진행되는 항목 중 하나다.
영문 원문을 직접 보려면 TDA 공식 룰 페이지에 전문이 공개돼 있다. 대회마다 하우스 룰로 일부를 수정하는 경우가 있으니, 큰 대회라면 참가 시 배포되는 규정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테이블을 옮겼는데 빅블라인드를 또 내라고 합니다. 항의할 수 있나요?
밸런싱으로 옮긴 경우라면 정상적인 진행입니다. TDA 룰 11-A는 옮겨가는 플레이어를 받는 테이블의 최악의 자리에 앉히며, 그 자리가 빅블라인드를 두 번 내는 자리일 수 있다고 명시합니다. 다만 스몰 블라인드 자리에 앉혔다면 그건 규정 위반이므로 플로어를 부르는 게 맞습니다.
밸런싱인지 브레이킹인지 어떻게 구분하나요?
한 명만 호명되면 밸런싱, 테이블 전원이 일어나면 브레이킹입니다. 애매하면 딜러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어느 쪽이냐에 따라 새 자리에서 블라인드를 내는지가 달라지므로 확인할 가치가 있습니다.
옮긴 자리에서 바로 카드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나요?
있습니다. 깨진 테이블에서 옮겨와 스몰 블라인드 자리와 버튼 자리 사이에 앉게 되면 그 핸드는 받지 못하고 다음 핸드부터 참여합니다. 그 구간은 이번 바퀴의 블라인드가 이미 지나간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없는 자리에 버튼이 놓여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데드 버튼입니다. 버튼이 될 차례였던 플레이어가 탈락하면 버튼을 그 빈 자리에 그대로 두고 한 핸드를 진행합니다. 버튼을 앞당기면 누군가는 블라인드를 두 번 내거나 건너뛰게 되므로, 빈 자리를 그대로 두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이동할 자리를 고를 수 있나요?
없습니다. 특히 브레이킹에서는 TDA 룰 10-B에 따라 2단계 무작위 절차로 테이블과 좌석이 함께 배정됩니다. 동행자와 같은 테이블을 피하거나 특정 상대를 피하려는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온라인 토너먼트도 같은 규칙인가요?
다릅니다. 온라인은 보통 인원이 많은 테이블에서 무작위로 한 명을 뽑아 옮기고, 빅블라인드에서 먼 자리에 앉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라이브처럼 빅블라인드가 될 사람을 지목하지 않으므로 이동 직후 블라인드를 연속으로 내는 상황은 드뭅니다. 구체적인 처리는 사이트별 토너먼트 규정에 적혀 있습니다.
정리하면 기억할 문장은 하나다. 혼자 불려 나가면 블라인드를 각오하고, 테이블 전체가 일어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수 있다. 칩을 들고 일어서는 순간 어느 쪽인지만 알아도, 새 자리에서 딜러를 쳐다보며 멈칫할 일은 없어진다.